♡ 반야 심경 법문 (스물두번째)
무아/無我-나의 실체가 없다.
모든 것에는 본래 실체가 없는데 사람들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착각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하나의 우유컵이 작은 것일까? 큰 것일까?
작다는 것은 큰 것을 비교해서 작은 것이 되고,
큰 것은 작은 것을 비교해서 큰 것이 된다.
비교 하지 않았을 때 그 컵은 작은 것도 아니고,
큰 것도 아니다.
무겁다 가볍다 새것이다 헌 것이다.
길다 짧다 하는것도 마찬 가지다.
본래의 우유컵은 작은 것도 큰 것도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헌것도 새것도 아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무아(無我)로 존재 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 이다.
좋은 사람 나쁜사람이 선과 악이 본래 정해진 요소는 없다.
옷을 입고 사느냐, 벗고 사느냐 하는것도 그나라 문화에 따라
벗고 살기도 하고 입고 살기도 한다.
목욕탕에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다.
앉고 눕고 잠자고 서 있는 것도 다 그러하다.
때와 장소 에 연관되어 필요에 따라 구성되어 진다.
자야될 시간에 잠을 자지 않으면 그는 잘못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我-나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지만
철저하게 따져보면 나라고 할것이 없다.
달라이라마 존자를 세계인들이 존경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를 반기지 않는다.
존경한다 미워한다에도 그 실체는 없다.
모든 것에는 인연이란 연기로 일어나는 것이지
실체는 공하여 본래 없다.
삼조 승찬 대사가 이조 혜가 대사를 찾아 왔다.
삼조 승찬대사는 문둥병 환자였다.
문등병은 억겁의 죄업으로 받은 과보라고 사람들은
모두 생각하고 있든 시대 이다.
저의 죄가 한 없이 무거우니 저의 죄를 참회하게
하여 주십시요!
이조 혜가대사가 대답하였다.
자네가 그 무겁다는 죄업을 내 눈앞에 내놓으면
당장 고쳐 주겠네!
그 말에 그 찰나에 삼조승찬은 자기 죄업의 무게를 내려놓으려고
내면을 조견 깊이 들여다 비추어 보니
아무곳에도 죄는 보이지 않았다.
큰 스님!
아무리 찾아 보아도 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죄는 이미 없어진 것 아니요!
그 말에 삼조 승찬대사는 크게 깨닫고 출가하여
선가의 대를 잇는 삼조가 되셨다.
천수경에 나오는 "죄무자성종심기" 이다.
죄는 본래 자성이란 종자가 없다는 말이다.
자기의 내면을 깊이 비추어 본다.
조견 오온개공-비추어 보면 모두가 공한 것인줄 깨닫는다.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隨緣性) 지킬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 지고 떠나가고
사라질 뿐이지, 我-자기란 본래 없어 공한 것이다.
마하반야 바라밀은 인생이란 풍랑의 바다를 건너주는 배다.
삶의 지혜는 투쟁이 아니다.
무아와 무상을 알지 못하면 풍랑의 파도에 휘말려 모두 함께 침몰하고 만다.
풍랑의 저 언덕을 침몰하지 않고 서로 서로 도우며 반조하여 건너가야 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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